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긴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가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EMK뮤지컬컴퍼니에서 제작한 6번째 창작 뮤지컬이다. 특히,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한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 감독의 콜라보 작품으로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1. 무대 위에 실현된 추억
<베르사유의 장미>는 일본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로 유명하다. 수 많은 사람들의 오랜 추억으로 남아있는 작품이기에 무대 위로 실현시키는데 많은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담감이 무색할 만큼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뮤지컬만의 매력을 더해 또 하나의 좋은 작품이 탄생했다.
사실, 이 작품의 캐릭터 포스터가 공개되었을때만 해도 만화 속 모습과 현실 간의 이질감이 느껴져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대와 의상 그리고 분장 디자인은 원작과 현실 그 사이,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수준으로 잘 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다른 뮤지컬 작품과의 차별성은 크게 없었다는 점은 다소 아쉽기도 하다)
만화를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한다면 오글거리는 대사와 액션에 몰입이 안될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과함을 의도적으로 덜어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 지금보다도 더 애니메이션스러운 액션은 덜어내고 더 현실화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 고난이도의 넘버리스트
작품이 개막하기 전, 몇몇 넘버들이 먼저 공개됐었다. 작품을 보지 않은 상태로 넘버만 들었을 때에도 극악의 난이도임이 느껴졌고, '배우들이 오랜 공연 기간 동안 과연 무사히 소화가 가능할까?'하는 걱정까지 되었다. 실제 무대에서는 난이도 조절이 되어서 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높은 난이도를 유지한 채 개막했고, 덕분에 공연을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귀가 호강할 수 있었다. 사실, 관람 전 공개된 넘버들을 먼저 들었을 때에는 넘버가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전체적인 스토리와 함께 들으니 다 매력적인 넘버들이었고 여운까지 남아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 찾게 되었다.
특히, 오스칼 넘버들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면서도 좋은 넘버들이 많았다. '나 오스칼', '넌 내게 주기만', '나를 감싼 바람은 내게만 불었나' 등 이성준 음악감독이 정말 작정하고 만든 듯한 넘버들의 연속이었다. 뿐만 아니라, 앙드레가 부르는 '독잔', '이대로 아침까지'나 폴리냑이 부르는 '마담 드 폴리냑' 등 듣기 좋은 넘버들이 많았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넘버이지 않을까 싶다.
이토록 어려운 넘버들이 듣기 편안했던 이유는 그만큼 배우들이 잘 소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관람했던 페어는 옥주현 배우, 김성식 배우 그리고 박혜미 배우였다. 세 배우 모두 미친 성량을 자랑했고, 정말 부족함 없는 가창력을 한 껏 즐길 수 있었다. 옥주현 배우의 오스칼은 강인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넘치면서도 내면은 여린 캐릭터였고, 김성식 배우의 앙드레는 부드럽지만 정말 믿음직스러운 앙드레였다. 마지막으로, 박혜미 배우는 뽈리냑 그 자체였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3. 조금은 부족했던 뒷심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면, 방대한 만화 원작의 내용을 다 담고자 했던 욕심이 조금 아쉬움을 남겼다.
1부에서는 각 인물과 배경에 대해 과함이나 부족함 없이 스토리가 흘러갔다. 1부가 끝나고 '어라? 이 작품 재밌네?'하는 생각과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이 들었지만, 2부가 시작되자 이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스토리의 끊김'이었다. 150분에 담기에는 너무 많은 인물에 대한 서사와 사건이 등장하여, 오히려 오스칼이라는 주인공의 서사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는 흐름이었다. 그렇다보니, 오스칼의 넘버들이 정말 파워풀하고 임팩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와는 별개로 흐름 상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어쩌면 전체적인 스토리에 필요한 넘버들이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멋진 넘버들을 먼저 만들고 그 넘버리스트에 수 많은 스토리를 짠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또 하나의 훌륭한 창작 작품이 탄생한 것 만큼은 사실이다. 아직 초연인 작품이고, 앞으로 시즌을 거듭할수록 부족한 부분들은 개선이 되어 돌아올테니, 앞으로가 또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를 감싼 바람은 내게만 불었나
내가 걸어온 길은 내게만 평탄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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